오창균의 정치 기상대
李 대통령, 서울 아닌 파리에서 '연임' 발언 전해
"제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다"
이번에도 "연임 안 한다"고 명시적 답변은 안해
대신 홍보수석이 해석해주는 '현상' 되풀이

▲ 프랑스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영접나온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9일 국회 대정부질문.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물었다. "이재명 정부 국정 목표 1번이 뭡니까." 한성숙 국무총리는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개헌입니다" 놀란 윤 의원이 "네?"라고 되묻자, 총리는 그제야 "아,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 국정과제"라고 고쳐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곧바로 SNS에 썼다. "본심이 튀어나온 것"
법률에는 묵시적 자백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땅히 부인해야 할 순간에 부인하지 않으면, 그 침묵이 곧 시인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한 달은 이 원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 대통령은 9일 파리에서 "제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다"고 했다. 두루뭉술하다. 이번에도 "연임 안 한다"가 아니었다. 지난달 14일에는 X에 "4년 중임 또는 연임제 개헌을 위해 필요하면 제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고 썼다. 이 때도 연임 포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헌법 128조 2항에는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이 그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적시돼 있다. 지금 개헌을 발의해 통과시켜도 이재명 대통령 본인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헌법상 제한돼 있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이 없다. 법이 이미 정해둔 사실을 꺼내 놓았을 뿐이다.
이 애매한 말에 해석을 붙인 것은 청와대 관계자였다. 성기홍 홍보소통수석은 10일 라디오에서 "연임 안 한다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를 놓고 다시 논란이 번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그래서 한 번 더 하려면 꼼수 개헌이 필요하다는 뒷부분을 잘라내고 앞부분만 이야기한 것"이라 꼬집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죽어도 연임 안 한다, 재판받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는 그 본심은 충분히 알았다"고 비판했다.
모호한 화법을 쓰는 것은 이 대통령 혼자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또한 '연임은 없다'는 말을 삼킨 채 개헌(改憲)만 강조해왔다. 대통령은 뒤로 빠지고 여당은 개헌 드라이브를 늦추지 않는다. 묵시적 자백의 원리는 여기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공소 취소' 논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김승원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 공동대표를 지낸 김 의원은 "정치검찰이 조작 기소한 사건은 지금 당장 공소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형사소송법은 1심 판결 전까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장관이 직접 취소서를 내지는 못해도 사실상 검찰총장 지휘권으로 사건에 관여할 수 있다. 공소 취소를 외치던 사람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자리에 앉게 생겼다. 이와 관련해 야권은 "집권 2년 차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대통령 재판 공소 취소라는 대국민 메시지"라 규정했다. 총리의 실언과 정확히 대구를 이루는 지적이다.
여당의 반응도 낯익다. 공소 취소를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물증 없이는 안 된다"며 선을 긋는다. 헌법 128조 뒤에 숨던 화법과 유사해 보인다. 이것 역시 "안 하겠다"가 아니라 "때가 아니다"로 읽힌다. 게다가 김승원 의원은 현재 브로커 청탁을 받고 제약사 임상시험 승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제3자 뇌물죄 의혹까지 받는다. "전과 총 34범 인사 참사"라는 비판 와중에도 여권은 김승원 의원을 감싼다.
법률에는 기판력(旣判力)이라는 말이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다툴 수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소 취소가 유독 절박한 이유가 여기 있다. 개헌은 일단 실패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을 안고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재판은 한 번 확정되면 되돌릴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두 사안이 향하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점식 원내대표가 이미 짚었듯, "죽어도 그 말은 못 한다." 이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이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관통한다. 권력을 잃는 것, 그리고 그 권력을 잃은 뒤 법정에 서는 것이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침묵을 바랄 수 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의심도 커지고, 의심은 곧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그 침묵을 걷어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헌법 조문 뒤에 숨는 것도, 참모가 대신 나서 해석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문장, "연임하지 않겠다"는 그 말뿐이다.
오창균 기자 crack007@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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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균의 정치 기상대
▲ 프랑스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영접나온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9일 국회 대정부질문.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물었다. "이재명 정부 국정 목표 1번이 뭡니까." 한성숙 국무총리는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개헌입니다" 놀란 윤 의원이 "네?"라고 되묻자, 총리는 그제야 "아,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 국정과제"라고 고쳐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곧바로 SNS에 썼다. "본심이 튀어나온 것"
법률에는 묵시적 자백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땅히 부인해야 할 순간에 부인하지 않으면, 그 침묵이 곧 시인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한 달은 이 원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 대통령은 9일 파리에서 "제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다"고 했다. 두루뭉술하다. 이번에도 "연임 안 한다"가 아니었다. 지난달 14일에는 X에 "4년 중임 또는 연임제 개헌을 위해 필요하면 제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고 썼다. 이 때도 연임 포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헌법 128조 2항에는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이 그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적시돼 있다. 지금 개헌을 발의해 통과시켜도 이재명 대통령 본인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헌법상 제한돼 있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이 없다. 법이 이미 정해둔 사실을 꺼내 놓았을 뿐이다.
이 애매한 말에 해석을 붙인 것은 청와대 관계자였다. 성기홍 홍보소통수석은 10일 라디오에서 "연임 안 한다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를 놓고 다시 논란이 번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그래서 한 번 더 하려면 꼼수 개헌이 필요하다는 뒷부분을 잘라내고 앞부분만 이야기한 것"이라 꼬집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죽어도 연임 안 한다, 재판받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는 그 본심은 충분히 알았다"고 비판했다.
모호한 화법을 쓰는 것은 이 대통령 혼자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또한 '연임은 없다'는 말을 삼킨 채 개헌(改憲)만 강조해왔다. 대통령은 뒤로 빠지고 여당은 개헌 드라이브를 늦추지 않는다. 묵시적 자백의 원리는 여기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공소 취소' 논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김승원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 공동대표를 지낸 김 의원은 "정치검찰이 조작 기소한 사건은 지금 당장 공소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형사소송법은 1심 판결 전까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장관이 직접 취소서를 내지는 못해도 사실상 검찰총장 지휘권으로 사건에 관여할 수 있다. 공소 취소를 외치던 사람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자리에 앉게 생겼다. 이와 관련해 야권은 "집권 2년 차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대통령 재판 공소 취소라는 대국민 메시지"라 규정했다. 총리의 실언과 정확히 대구를 이루는 지적이다.
여당의 반응도 낯익다. 공소 취소를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물증 없이는 안 된다"며 선을 긋는다. 헌법 128조 뒤에 숨던 화법과 유사해 보인다. 이것 역시 "안 하겠다"가 아니라 "때가 아니다"로 읽힌다. 게다가 김승원 의원은 현재 브로커 청탁을 받고 제약사 임상시험 승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제3자 뇌물죄 의혹까지 받는다. "전과 총 34범 인사 참사"라는 비판 와중에도 여권은 김승원 의원을 감싼다.
법률에는 기판력(旣判力)이라는 말이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다툴 수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소 취소가 유독 절박한 이유가 여기 있다. 개헌은 일단 실패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을 안고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재판은 한 번 확정되면 되돌릴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두 사안이 향하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점식 원내대표가 이미 짚었듯, "죽어도 그 말은 못 한다." 이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이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관통한다. 권력을 잃는 것, 그리고 그 권력을 잃은 뒤 법정에 서는 것이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침묵을 바랄 수 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의심도 커지고, 의심은 곧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그 침묵을 걷어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헌법 조문 뒤에 숨는 것도, 참모가 대신 나서 해석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문장, "연임하지 않겠다"는 그 말뿐이다.
오창균 기자 crack007@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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