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안보대화서 남중국해 중재 판정 부정한 中에 정면 반박… “강대국도 국제법 따라야”
6·25 때 피 흘린 필리핀, 서울서 중국과 맞짱… 한국도 주권·국제법 원칙 분명히 해야

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이 8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최한 국제안보회의인 서울안보대화(SDD)에서 중국이 전해준 쪽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루스데일리
8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최한 국제안보회의인 서울안보대화(SDD)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필리핀의 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국방장관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준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던 중 2016년 남중국해 중재 판정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담은 쪽지가 회의 도중 그에게 전달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쪽지를 통해 그의 발언에 제동을 걸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사건은 오히려 이번 회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테오도로 장관은 그 쪽지의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읽었다.
쪽지에는 “남중국해 중재 판정은 ‘불법’이며 법적 구속력이 없고,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 테오도로 장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물론 인정하지 않겠죠. 졌으니까요.”
짧고 직접적이었으며, 매우 강력한 반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의미는 단순히 재치 있는 한마디에 그치지 않는다. 그 장면은 오늘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훨씬 더 큰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 간의 분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국제법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가장 강한 국가의 정치력과 군사력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필리핀은 국제법을 선택했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필리핀의 입장은 군사적 충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법에서 시작되었다.
필리핀은 2013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중국을 상대로 중재 절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12일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구성된 중재재판부는 중국의 광범위한 남중국해 해양권 주장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들을 인정하지 않는 판정을 내렸다. 중국은 이 절차를 거부했고, 지금까지도 그 판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판정을 거부한다고 해서 핵심적인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국제법적 절차를 무시해도 되는가? 아시아의 중소국가와 중견국들에게 이 문제는 추상적인 논쟁이 아니다. 국제질서의 근본에 관한 문제다.
만약 국제법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맞을 때만 적용된다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점점 더 강압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나온 테오도로 장관의 발언은 중요하다.
그가 유엔해양법협약을 무시하는 것은 국제법을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을 때, 그는 단순히 필리핀의 국익만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측 가능한 국제 규칙과 법질서에 자국의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게 중요한 원칙을 옹호하고 있었다.

중국이 보내온 쪽지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 트루스데일리
필리핀이 보여준 단호한 대응
이번 사태에서 테오도로 장관이 보여준 대응은 특별히 평가할 만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쪽지로 인해 발언의 흐름을 빼앗기는 대신, 오히려 그 상황 자체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바꾸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행동을 단순히 ‘회색지대 전략’으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압과 괴롭힘, 침략의 문제로 규정했다. 또한 그 쪽지를 자신이 보관하겠다며, 중국이 얼마나 다급하게 필리핀의 입장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념물로 삼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외교적 입장을 떠나 그의 침착함과 자신감은 분명했다. 필리핀은 매우 어려운 지정학적 현실에 놓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와 국경을 맞대다시피 한 상황에서 자국의 해양권익을 지켜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안보도 고려해야 한다. 어민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 군사적 위험과 지역의 안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필리핀은 최근 들어 평화로운 관계가 국제법에 보장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필리핀 국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도·태평양 전체에 중요한 메시지다. 대한민국도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깊이 성찰해야 할 계기이기도 하다.
서울안보대화는 대한민국이 주최한 회의다. 외국의 국방장관과 고위 안보 당국자들은 대한민국이 질서 있고 전문적인 외교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참석한다. 그렇다면 왜 공식 세션에서 발언 중인 외국 국방장관에게 외부의 정치적 메시지가 직접 전달될 수 있었는가?
설령 현장 진행요원의 단순한 오인이나 착오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의전과 보안 절차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국방장관·군 관계자·외교관·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라면 연단에 있는 인사에게 전달되는 모든 의사소통은 명확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보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최국은 외국의 고위 인사를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공식회의가 확인되지 않은 접근이나 의사전달로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면밀하고 투명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 목적은 정치적 책임 공방을 벌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한국인이 이번 사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필리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단순히 외교와 무역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을 파병했다. 수천 명의 필리핀 장병들이 한국 땅에서 복무했다. 그들은 율동전투, 이리고지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싸웠고, 그들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전쟁사에 깊이 남아 있다.
필리핀 장병들은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에 왔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그는 단순한 우방국의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던 때 한국인들과 함께 싸웠던 나라를 대표한다.
이 역사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행사에 참석한 필리핀 고위 인사를 더욱 존중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 역시 중국 군사력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역사적으로 직접 경험한 나라다. 1950년 말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후,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인민지원군과 수많은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강대국의 군사적 압박은 추상적인 역사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국가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중국이 영원히 적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외교를 해야 한다. 무역도 해야 한다. 대화도 해야 한다. 평화적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교적 신중함이 기본적인 원칙 앞에서의 침묵으로 변해서도 안 된다. 성숙한 외교란 중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주권과 국제법, 그리고 우방국의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 있는 외교의 핵심이다.
서울에서 얻어야 할 더 큰 교훈
서울안보대화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거대한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작은 사건이 더 큰 진실을 보여준다. 한 장의 쪽지는 남중국해 문제가 얼마나 치열한 국제적 쟁점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필리핀 국방장관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도 위협이나 강압이 아니라 국제법을 근거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제안보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 단순히 회의장과 연단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워야 했다.
국제회의를 개최하려면 외교적 기강이 필요하다. 안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적절한 질서와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아시아의 민주 국가들에게도 하나의 교훈을 던진다. 국제질서는 각국이 그 규칙을 일관되게 지키려 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이 쉽고 편할 때만 지켜서는 안 된다.
필리핀은 2016년 남중국해 중재 판정을 자국의 해양 권익을 지키는 핵심 근거로 삼고 있다. 다른 나라가 필리핀의 모든 전략적 입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강대국도 규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국제질서의 원칙이 왜 중요한지는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역사적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기자는 대한민국이 이 원칙만큼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우리의 자유와 국가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한민국과 함께 섰다.
오늘날 필리핀이 국제법과 자신들의 정당한 해양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국인들은 그 요구가 왜 중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서울에서 나온 테오도로 장관의 발언은 단순히 예상치 못한 쪽지에 대한 재치 있는 대응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시아 전체를 향한 하나의 메시지로 기억되어야 한다. 힘도 중요하다. 외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법은 더욱 중요해야 한다.
윤정화 기자 yoonjenny3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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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이 8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최한 국제안보회의인 서울안보대화(SDD)에서 중국이 전해준 쪽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루스데일리
8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최한 국제안보회의인 서울안보대화(SDD)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필리핀의 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국방장관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준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던 중 2016년 남중국해 중재 판정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담은 쪽지가 회의 도중 그에게 전달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쪽지를 통해 그의 발언에 제동을 걸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사건은 오히려 이번 회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테오도로 장관은 그 쪽지의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읽었다.
쪽지에는 “남중국해 중재 판정은 ‘불법’이며 법적 구속력이 없고,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 테오도로 장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물론 인정하지 않겠죠. 졌으니까요.”
짧고 직접적이었으며, 매우 강력한 반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의미는 단순히 재치 있는 한마디에 그치지 않는다. 그 장면은 오늘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훨씬 더 큰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 간의 분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국제법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가장 강한 국가의 정치력과 군사력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필리핀은 국제법을 선택했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필리핀의 입장은 군사적 충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법에서 시작되었다.
필리핀은 2013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중국을 상대로 중재 절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12일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구성된 중재재판부는 중국의 광범위한 남중국해 해양권 주장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들을 인정하지 않는 판정을 내렸다. 중국은 이 절차를 거부했고, 지금까지도 그 판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판정을 거부한다고 해서 핵심적인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국제법적 절차를 무시해도 되는가? 아시아의 중소국가와 중견국들에게 이 문제는 추상적인 논쟁이 아니다. 국제질서의 근본에 관한 문제다.
만약 국제법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맞을 때만 적용된다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점점 더 강압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나온 테오도로 장관의 발언은 중요하다.
그가 유엔해양법협약을 무시하는 것은 국제법을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을 때, 그는 단순히 필리핀의 국익만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측 가능한 국제 규칙과 법질서에 자국의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게 중요한 원칙을 옹호하고 있었다.
중국이 보내온 쪽지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길베르토 C.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 트루스데일리
필리핀이 보여준 단호한 대응
이번 사태에서 테오도로 장관이 보여준 대응은 특별히 평가할 만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쪽지로 인해 발언의 흐름을 빼앗기는 대신, 오히려 그 상황 자체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바꾸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행동을 단순히 ‘회색지대 전략’으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압과 괴롭힘, 침략의 문제로 규정했다. 또한 그 쪽지를 자신이 보관하겠다며, 중국이 얼마나 다급하게 필리핀의 입장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념물로 삼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외교적 입장을 떠나 그의 침착함과 자신감은 분명했다. 필리핀은 매우 어려운 지정학적 현실에 놓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와 국경을 맞대다시피 한 상황에서 자국의 해양권익을 지켜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안보도 고려해야 한다. 어민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 군사적 위험과 지역의 안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필리핀은 최근 들어 평화로운 관계가 국제법에 보장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필리핀 국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도·태평양 전체에 중요한 메시지다. 대한민국도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깊이 성찰해야 할 계기이기도 하다.
서울안보대화는 대한민국이 주최한 회의다. 외국의 국방장관과 고위 안보 당국자들은 대한민국이 질서 있고 전문적인 외교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참석한다. 그렇다면 왜 공식 세션에서 발언 중인 외국 국방장관에게 외부의 정치적 메시지가 직접 전달될 수 있었는가?
설령 현장 진행요원의 단순한 오인이나 착오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의전과 보안 절차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국방장관·군 관계자·외교관·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라면 연단에 있는 인사에게 전달되는 모든 의사소통은 명확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보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최국은 외국의 고위 인사를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공식회의가 확인되지 않은 접근이나 의사전달로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면밀하고 투명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 목적은 정치적 책임 공방을 벌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한국인이 이번 사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필리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단순히 외교와 무역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을 파병했다. 수천 명의 필리핀 장병들이 한국 땅에서 복무했다. 그들은 율동전투, 이리고지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싸웠고, 그들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전쟁사에 깊이 남아 있다.
필리핀 장병들은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에 왔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그는 단순한 우방국의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던 때 한국인들과 함께 싸웠던 나라를 대표한다.
이 역사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행사에 참석한 필리핀 고위 인사를 더욱 존중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 역시 중국 군사력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역사적으로 직접 경험한 나라다. 1950년 말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후,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인민지원군과 수많은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강대국의 군사적 압박은 추상적인 역사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국가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중국이 영원히 적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외교를 해야 한다. 무역도 해야 한다. 대화도 해야 한다. 평화적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교적 신중함이 기본적인 원칙 앞에서의 침묵으로 변해서도 안 된다. 성숙한 외교란 중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국가의 주권과 국제법, 그리고 우방국의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 있는 외교의 핵심이다.
서울에서 얻어야 할 더 큰 교훈
서울안보대화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거대한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작은 사건이 더 큰 진실을 보여준다. 한 장의 쪽지는 남중국해 문제가 얼마나 치열한 국제적 쟁점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필리핀 국방장관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도 위협이나 강압이 아니라 국제법을 근거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제안보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 단순히 회의장과 연단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워야 했다.
국제회의를 개최하려면 외교적 기강이 필요하다. 안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적절한 질서와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아시아의 민주 국가들에게도 하나의 교훈을 던진다. 국제질서는 각국이 그 규칙을 일관되게 지키려 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이 쉽고 편할 때만 지켜서는 안 된다.
필리핀은 2016년 남중국해 중재 판정을 자국의 해양 권익을 지키는 핵심 근거로 삼고 있다. 다른 나라가 필리핀의 모든 전략적 입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강대국도 규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국제질서의 원칙이 왜 중요한지는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역사적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기자는 대한민국이 이 원칙만큼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우리의 자유와 국가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한민국과 함께 섰다.
오늘날 필리핀이 국제법과 자신들의 정당한 해양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국인들은 그 요구가 왜 중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서울에서 나온 테오도로 장관의 발언은 단순히 예상치 못한 쪽지에 대한 재치 있는 대응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시아 전체를 향한 하나의 메시지로 기억되어야 한다. 힘도 중요하다. 외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법은 더욱 중요해야 한다.
윤정화 기자 yoonjenny3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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