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외교


[윤정화칼럼] 필리핀 참전용사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이중성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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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적국이던 중국엔 무비자… 필리핀인엔 비자 거절 ‘분노’

“우리는 당신네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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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스스로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의리 있는 나라’인가, 아니면 ‘이익만 따지는 파렴치한 나라’인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서 섰던 6·25 전쟁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한 나라였다. 총 7420명의 병력을 보내 121명이 전사하고, 40여 명이 실종됐으며 300여 명이 부상당했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대한민국이 오늘 존재하는 데 그들의 피가 분명히 스며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가.


현지에서 만난 한 참전용사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의 친척이 한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인에게는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고 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절당하고, 그때의 적은 환영받는다. 이게 정의인가.”


이 질문에 대한민국은 과연 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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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단순한 비자 정책이 아니다. 국가의 태도·기억 그리고 가치의 문제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준 우방국은 외면하면서, 경제적 이유로 혹은 우리가 잘 모르는 또다른 이유로 과거의 적에게 문을 활짝 여는 현실. 이것이 바로 필리핀 사람들이 느끼는 ‘한국의 이중성’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모순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리핀 청년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수년간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비자 장벽과 불투명한 채용 구조 앞에서 좌절한다. 반면 일부 국가는 훨씬 수월하게 한국에 들어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참전용사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함께 싸운 나라’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버린 나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경제 논리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특히 역사와 희생이 얽힌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피로 맺은 동맹을 돈의 논리로 재단하는 순간, 국격은 스스로 무너진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관계를 이용하는 치사한 나라로 전락할 것인가.


필리핀 참전용사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경고다.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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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필리핀 참전 기념비. 6·25 전쟁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한 나라다. 총 7420명의 병력을 보내 121명이 전사하고, 40여 명이 실종됐으며 300여 명이 부상당했다. 트루스데일리 



필리핀=윤정화 편집위원 yoonjenny3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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