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임금이 열세 살에 등극을 하고 나서 몇 년 후 한 번은 경연(經筵)에서 《맹자》를 강하였다. ‘탕임금은 70리로, 문왕은 100리로 천하를 얻었다’는 대목에 이르러 개연히 돌아보며 말하기를, “70리나 100리의 땅을 가지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거늘 하물며 우리나라 삼천리를 가지고서랴. 어떻게 하면 연운(燕雲)의 들에서 말을 몰아 우리 조종(祖宗)의 치욕을 씻는단 말인가?” 하였다. 경연에 있던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때 신정희(申正熙)가 무승지(武承旨)로 입시(入侍)하여 있다가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곧 묻기를 “어떤 계책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덕(德)을 닦으시옵소서” 하였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허탈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임금이 현안에 대한 대책을 물을 때 모범답안처럼 “덕을 쌓으시옵소서”라고 주문하는 것은 조선시대 신하들이 늘 하는 소리였습니다. 문신(文臣)들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신(武臣), 즉 군인은 이래서는 안 됩니다. 군인은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궁리해 실천에 옮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실질(實質)과 실용(實用)의 인간이 군인입니다. 그런데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무인(武人) 집안 출신인 신정희마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 방략을 물어보는 임금에게 수신(修身)을 권하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린 고종도 꽤나 허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자리에 동석했던 문신들은 ‘비록 무신이기는 하지만,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는 장수’라며 신정희를 칭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군인다운 군인이 없었고, ‘군사문화(軍事文化)’라는 게 아예 없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문약(文弱)했던 중국 송(宋)나라에서 발흥한 성리학(性理學)의 세례를 단단히 받았던 조선에는 군인들이 설 자리도, 군사문화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망국(亡國)이었습니다.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
일제(日帝) 35년을 겪고, 대한민국이 건국(建國)됐습니다. 건국은 건군(建軍)이기도 했습니다. 6·25라는 피와 철(鐵)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한 국군은 호국의 간성(干城)일 뿐 아니라 조국 근대화의 선봉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 혹은 7위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군이 정말 그런 강군(强軍)이 맞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兵力) 자원 감소, 왜곡된 급여 체계와 초급 장교와 부사관들의 이탈, 낡은 무기, 전쟁경험의 부재(不在) 등도 문제지만,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국군, 특히 장교단에게 건군 76주년을 맞도록 제대로 된 ‘군사문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무인으로서의 긍지도, 자부심도 없이, 권력에 아부하고, 시류(時流)에 영합하는 군인(혹은 군 출신 인사)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의 어느 육군참모총장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부른다고 청와대 인근 카페로 달려 갔습니다. 해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 장관은 국군의 전쟁 준비 태세를 무너뜨리는 9·19군사합의에 묵종(默從)했습니다. 공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 장관은 정권의 반일(反日) 선동에 조연(助演) 노릇을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이라도 전쟁이 나면 국군을 이끌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수(將帥)’들이 아니라 ‘모범 공무원’, 아니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이었습니다.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귀신 잡는 해병’ 사령관과 사단장은 청문회에 불려 나가 야당 의원들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같은 자리에 섰던 전직 국방장관에게서도 예비역 3성 장군다운 결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보사령부 사령관과 여단장은 소송전(訴訟戰)을 벌이다가 군 기밀을 누출하는 추태까지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4성 장군 출신의 야당 국회의원이 ‘계엄령’ 정치 공세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새카만 후배인 젊은 육사 출신 예비역 소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그를 ‘×××라는 자’라고 지칭하면서, ‘군 출신으로 대하기 힘든 수준의 언행으로 군 전체의 명예와 자긍심에 먹칠해대며 사기마저 저하시키고 있는’ 그를 ‘육사 총동창회에서라도 제명시키고, 육사교훈탑에서 이름을 제거해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군인답지 못한 군인, 장군답지 못한 장군들이 많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예부터 ‘군사문화’의 전통이 희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군인이 얼마나 귀한 줄 모릅니다. 군인들도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자기가 입고 있는 군복과 자기가 달고 있는 계급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모릅니다. 군복은 월급과 연금(年金)을 받기 위해 입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장교들, 계급장은 예편 후의 일자리나 금배지를 얻기 위해 달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장군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가 몸담고 있는(혹은 몸담고 있던) 국군을 욕보이는 저런 추태들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진짜 장군들’
1977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했습니다. 주한미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 소장은 북한의 전력(戰力) 증강 등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가 군복을 벗었습니다. 후일 그는 “그 바람에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별 둘로 예편된 데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 별 몇 개와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바꾼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피에르 드 빌리에 전 프랑스 합참의장은 2017년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면 충돌했습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은 세계 도처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프랑스 군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화가 난 대통령이 “나는 당신들의 상관”이라며 억누르려 했지만, 드 빌리에 장군은 “복종은 억압이 아닌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고 결국 군복을 벗었습니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8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동맹관계 훼손 등에 맞서다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매드 독(Mad dog)’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사임할 때 미군과 국방부 직원들에게 “나는 여러분 각자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면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임무에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국방부는 국가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 동맹국들과 함께, 적들에 맞서, 굳건한 태세를 유지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진짜 군인’들이었습니다. ‘×별’이 아닌, ‘진짜 장군’이었습니다.
진정한 충성
군인은 당연히 합헌정부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양심, 명예의식에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에 아부해서도 안 되고, 시류에 영합해서도 안 됩니다. 그게 진정한 ‘충성’이고, 군인으로서의 곧음[直]일 것입니다.
육사 생도 신조 중 첫 번째는 ‘나는 안일한 불의(不義)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正義)의 길을 택한다’입니다. 이는 유사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장교단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장병들은 군인정신이 결여된 ‘군복 입은 샐러리맨’이나 ‘×별’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월 1일은 국군의날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무력(武力)인 국군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군복 입은 샐러리맨’이 아닌 ‘참군인’들이 빛을 보는 국군을 꿈꾸어봅니다.⊙
출처; 월간조선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임금이 열세 살에 등극을 하고 나서 몇 년 후 한 번은 경연(經筵)에서 《맹자》를 강하였다. ‘탕임금은 70리로, 문왕은 100리로 천하를 얻었다’는 대목에 이르러 개연히 돌아보며 말하기를, “70리나 100리의 땅을 가지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거늘 하물며 우리나라 삼천리를 가지고서랴. 어떻게 하면 연운(燕雲)의 들에서 말을 몰아 우리 조종(祖宗)의 치욕을 씻는단 말인가?” 하였다. 경연에 있던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때 신정희(申正熙)가 무승지(武承旨)로 입시(入侍)하여 있다가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곧 묻기를 “어떤 계책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덕(德)을 닦으시옵소서” 하였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허탈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임금이 현안에 대한 대책을 물을 때 모범답안처럼 “덕을 쌓으시옵소서”라고 주문하는 것은 조선시대 신하들이 늘 하는 소리였습니다. 문신(文臣)들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무신(武臣), 즉 군인은 이래서는 안 됩니다. 군인은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궁리해 실천에 옮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실질(實質)과 실용(實用)의 인간이 군인입니다. 그런데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무인(武人) 집안 출신인 신정희마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 방략을 물어보는 임금에게 수신(修身)을 권하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린 고종도 꽤나 허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자리에 동석했던 문신들은 ‘비록 무신이기는 하지만,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는 장수’라며 신정희를 칭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군인다운 군인이 없었고, ‘군사문화(軍事文化)’라는 게 아예 없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문약(文弱)했던 중국 송(宋)나라에서 발흥한 성리학(性理學)의 세례를 단단히 받았던 조선에는 군인들이 설 자리도, 군사문화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망국(亡國)이었습니다.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
일제(日帝) 35년을 겪고, 대한민국이 건국(建國)됐습니다. 건국은 건군(建軍)이기도 했습니다. 6·25라는 피와 철(鐵)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한 국군은 호국의 간성(干城)일 뿐 아니라 조국 근대화의 선봉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 혹은 7위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군이 정말 그런 강군(强軍)이 맞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兵力) 자원 감소, 왜곡된 급여 체계와 초급 장교와 부사관들의 이탈, 낡은 무기, 전쟁경험의 부재(不在) 등도 문제지만,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국군, 특히 장교단에게 건군 76주년을 맞도록 제대로 된 ‘군사문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무인으로서의 긍지도, 자부심도 없이, 권력에 아부하고, 시류(時流)에 영합하는 군인(혹은 군 출신 인사)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의 어느 육군참모총장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부른다고 청와대 인근 카페로 달려 갔습니다. 해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 장관은 국군의 전쟁 준비 태세를 무너뜨리는 9·19군사합의에 묵종(默從)했습니다. 공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 장관은 정권의 반일(反日) 선동에 조연(助演) 노릇을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이라도 전쟁이 나면 국군을 이끌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수(將帥)’들이 아니라 ‘모범 공무원’, 아니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이었습니다.
‘군복 입은 샐러리맨’들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귀신 잡는 해병’ 사령관과 사단장은 청문회에 불려 나가 야당 의원들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같은 자리에 섰던 전직 국방장관에게서도 예비역 3성 장군다운 결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보사령부 사령관과 여단장은 소송전(訴訟戰)을 벌이다가 군 기밀을 누출하는 추태까지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4성 장군 출신의 야당 국회의원이 ‘계엄령’ 정치 공세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새카만 후배인 젊은 육사 출신 예비역 소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그를 ‘×××라는 자’라고 지칭하면서, ‘군 출신으로 대하기 힘든 수준의 언행으로 군 전체의 명예와 자긍심에 먹칠해대며 사기마저 저하시키고 있는’ 그를 ‘육사 총동창회에서라도 제명시키고, 육사교훈탑에서 이름을 제거해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군인답지 못한 군인, 장군답지 못한 장군들이 많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예부터 ‘군사문화’의 전통이 희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군인이 얼마나 귀한 줄 모릅니다. 군인들도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자기가 입고 있는 군복과 자기가 달고 있는 계급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모릅니다. 군복은 월급과 연금(年金)을 받기 위해 입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장교들, 계급장은 예편 후의 일자리나 금배지를 얻기 위해 달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장군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가 몸담고 있는(혹은 몸담고 있던) 국군을 욕보이는 저런 추태들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진짜 장군들’
1977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했습니다. 주한미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 소장은 북한의 전력(戰力) 증강 등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가 군복을 벗었습니다. 후일 그는 “그 바람에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별 둘로 예편된 데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 별 몇 개와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바꾼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피에르 드 빌리에 전 프랑스 합참의장은 2017년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면 충돌했습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은 세계 도처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프랑스 군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화가 난 대통령이 “나는 당신들의 상관”이라며 억누르려 했지만, 드 빌리에 장군은 “복종은 억압이 아닌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고 결국 군복을 벗었습니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8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동맹관계 훼손 등에 맞서다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매드 독(Mad dog)’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사임할 때 미군과 국방부 직원들에게 “나는 여러분 각자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면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임무에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국방부는 국가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 동맹국들과 함께, 적들에 맞서, 굳건한 태세를 유지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진짜 군인’들이었습니다. ‘×별’이 아닌, ‘진짜 장군’이었습니다.
진정한 충성
군인은 당연히 합헌정부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양심, 명예의식에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에 아부해서도 안 되고, 시류에 영합해서도 안 됩니다. 그게 진정한 ‘충성’이고, 군인으로서의 곧음[直]일 것입니다.
육사 생도 신조 중 첫 번째는 ‘나는 안일한 불의(不義)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正義)의 길을 택한다’입니다. 이는 유사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장교단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장병들은 군인정신이 결여된 ‘군복 입은 샐러리맨’이나 ‘×별’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월 1일은 국군의날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무력(武力)인 국군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군복 입은 샐러리맨’이 아닌 ‘참군인’들이 빛을 보는 국군을 꿈꾸어봅니다.⊙
출처; 월간조선